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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보라매의 탄생 (광복이전 ~ 1951.4)

보라매의 탄생! : 건군과 공군사관학교의 창설 (광복 이전 ~ 1951.4)

1949년 6월 10일 제1기 사관생도 97명의 입학으로 시작한 공군사관학교 반세기의 역사는 3·1운동에 힘입어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무장 독립투쟁의 기본정신을 계승하고, 1948년 8월 15일에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의 기본이념인 자유민주주의의 실현과 조국의 평화적 통일이라는 민족적 대업의 최선봉에 설 공군 정예 장교의 양성과정이었다.

본교는 1949년 10월 1일 공군이 독립함에 따라 항공사관학교에서 공군사관학교로 학교명을 개칭하였고, 다음 해인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하자 학교를 김포에서 대구,진해,서울, 제주도 모슬포, 그리고 다시 진해로 이동하면서 사관생도의 교육과 훈련에 전력하였다. '조국의 하늘은 우리의 손으로 지키자'는 신념 아래 김포의 들녘에 본교가 창설된 후 6·25전쟁으로 말미암아 1951년 5월 진해에 정착하여 생도 교육이 정상화되기까지 3명의 교장이 부임하였다. 초대 교장 김정렬 중령은 제1기 사관생도의 선발과 교육환경을 준비하는 업무에 전력하였고, 1기 사관생도가 입학한 후에는 '실질강건(實質剛健)'과 '충·용·근·검(忠·勇·勤·儉)'을 교육목표로 삼고 사관생도들이 일류 공중지휘관으로 발전할 것을 강조하였다. 공군 독립일인 1949년 10월 1일 제2대 교장으로 취임한 이근석 대령은 1기 사관생도에 대한 일반교양교육과 항공과학기술교육이 균형 있게 운영될 수 있도록 하였다. 6·25전쟁 발발 약1개월 전인 1950년 5월14일 제3대 교장으로 취임한 광복군 출신의 최용덕 소장은 전쟁 중에 본교의 안정적인 후방철수와 제2기 사관생도 171명의 선발 및 교육훈련을 지휘하였다.

본교 초창기의 교육과정은 2년제로 운영되었으나, 그나마도 6·25전쟁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교육운영에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제1기 사관생도의 1차 연도 교육은 김포교사에서 비교적 안정된 교육환경 아래 일반교양학과 군사훈련을 실시하였고, 교장을 비롯한 지휘관, 참모들은 양질의 교육을 위해 학식과 덕망을 겸비한 인사들을 강사로 초빙하는 일에 노력을 다하였다.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에 운영된 제1기 사관생도의 2차 연도 교육은 비행훈련에 필요한 항공과학기술과 관련된 내용이 주종을 이루었다. 이 시기 제1기 사관생도들은 학교가 이동하는 와중에도 대구와 사천기지에서 F-51 무스탕 전투기와 L-4항공기에 대한 지상학술교육을 이수함으로써 전투조종사로서 조기에 작전에 참여할 수 있는 기본 기량을 연마하였다.

본교 창설기의 생도전대는 학년별로 중대를 구성하고, 중대 내에 36명의 동기생을 기본단위로 하는 구대를 편성하였다. 아직 훈육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중대장과 구대장으로 보임된 훈육관들은 열정적으로 생도생활을 지도하였다. 제1기 사관생도의 생도생활 기간 중에 운영되었던 자치근무제도는 주번근무제와 구대부장교제였다. 일과 후 구대장을 대신하여 군기 유지 임무를 수행했던 주번근무생도의 근무기간은 1주일이었고 모든 생도는 1회 이상 주번근무를 담당하였다. 제1기 사관생도들이 비행훈련에 입과하기 이전에 운영되었던 구대부장교제는 선배생도가 부구대장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제2기 사관생도의 군사훈련을 지도하는 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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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 (1951.5 ~ 1958.11)

새로운 시작 : 진해캠퍼스의 공군사관학교 (1951.5 ~ 1958.11)

공군사관학교 현판 이후 6·25전쟁이 진행 중이었던 1951년 5월 진해만에 터전을 마련한 본교는 1958년 12월 서울캠퍼스로 이동하기까지 만 7년 동안 진해에 머물면서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교육훈련의 내실화와 교육환경의 정비에 정진하였다. 특히, 앞으로는 진해만의 푸른 바다를 바라보고, 뒤로는 천자봉을 등지고 자리 잡은 진해캠퍼스의 정경은 이곳에서 첫 졸업의 영광을 안은 1기 사관생도부터 이곳에서 생도생활을 처음 시작한 10기 사관생도에게까지 고향과 같은 보금자리로 남아있다. 본교가 진해에 정착한 지 2년 후인 1953년 7월 6·25전쟁은 휴전협정 조인으로 교전 상태가 중지되었다. 휴전과 함께 한국 공군은 향후의 발전방향을 전투 중점에서 전력의 강화로 전환하였고, 이러한 목표 아래 공군의 제트화가 진행되어 1955년부터는 F-86전투기를 보유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공군의 전력강화 과정에서 교육 분야에 대한 관심이 점차 증대되면서 공군 내의 학교교육이 체계화되었고 고도의 과학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군내·외 파견교육이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진해캠퍼스 시절에 본교에는 3명의 새로운 교장(제4대 김정렬 소장, 제5대 김창규 준장, 제6대 신상철 대령)이 취임하였고, 이들은 본교의 교육발전 방향이 한국 공군의 전력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재임 기간 중 열성을 다하였다. 이들 중에서 1953년 12월 취임한 제6대 신상철 교장은 5년 9개월간 재임하면서 본교 교육제도의 근간을 확립하였을 뿐만 아니라 본교의 서울캠퍼스 이전 작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였다.

진해캠퍼스 시절, 사관학교의 교육제도는 중요한 변화를 겪게 되는데, 그것은 6·25전쟁의 휴전으로 생도교육과정이 4년제 평시교육과정으로 전환되고, 졸업생들에게 학사학위를 수여하는 제도가 확립된 것이라 하겠다. 이 제도를 운영하기 위하여 국방부는 문교부와의 협조를 거쳐 「사관학교 설치법」을 입안했으며, 국회는 이 법안을 1955년 9월 29일 통과시키고 같은 해 10월 1일에 공포하였다. 이에 따라 개교 7년째인 1956년 4월 10일 4기 사관생도의 졸업식 및 임관식에서 졸업생 102명에게 본교 최초로 이학사 학위가 수여되었다. 또한 진해에 정착한 후 본교의 교육이념과 정신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할 필요성이 증대되었고, 이에 따라 1951년 봄 학교장이었던 최용덕 장군이 쓴 가사를 바탕으로 교가(校歌)가 제정되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본교 사관생도의 생활규범으로 자리 잡고 있는 ‘공사십훈(空士十訓)’이 제정된 것도 이 시기였다. 그리고 본교는 1954년 3·1절에 이승만 대통령이 하사(下賜)한 친필 휘호, ‘무용(武勇)’을 교육의 지표라 할 수 있는 교훈으로 제정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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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튼한 성장 : 서울캠퍼스의 공군사관학교 (1958.12 ~ 1985.11)

튼튼한 성장 : 서울캠퍼스의 공군사관학교 (1958.12 ~ 1985.11)

본교는 1954년부터 진해에서 서울로 기지 이전을 추진하여, 1958년 12월 19일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대방동에 관악산을 향하여 자리 잡은 새로운 캠퍼스를 준공하였다. 이로써 공군사관학교는 창설 10년 만에 비로소 현대적인 교육환경을 구비하게 되었다. 대방동의 서울캠퍼스는 이전 다음 해에 입학한 10기 사관생도에서부터, 청원기지로 이전하는 1985년 입학한 37기 사관생도에 이르기까지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본교의 성장과 도약을 위해 함께 노력했던 성무인들의 숱한 추억이 깃든 보금자리가 되었다.

30년에 가까운 서울캠퍼스 시절, 본교에는 19명의 교장이 취임하였다. 이들 지휘관들은 초음속 전투기 운용 등 당시 공군의 성장에 발맞추어 인력을 양성하고 배출하기 위하여 교육과정과 교육환경을 발전시켜 나갔다. 1966년 4월 11일에 박정희 대통령이 본교를 성무대(星武臺)로 명명한 것을 계기로 졸업생들은 스스로 ‘우리는 성무인’이라는 공통의 내면의식을 형성하고, 이를 전통으로 삼았다. 서울캠퍼스 시절의 발전된 교육환경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초음속 항공기 시대의 교육을 대비해 1965년부터 시공된 초음속 풍동실험실을 비롯하여 1970년 기지 서편에 준공되어 생도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된 한반도 모양의 호수, 사관생도의 역사의식을 형성하기 위해 1979년에 개관한 기념관, 그리고 컴퓨터 사용의 보편화에 부응하여 1982년에 설치된 전자계산소 등을 들 수 있다.

서울캠퍼스 시기의 교육과정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학칙과 교훈의 제정이라고 할 수 있다. 본교는 1958년 말부터 사관학교 설치법과 시행령에 명시된 세부사항을 학칙으로 명문화하는 작업을 시작하였고, 마침내 1959년 12월 1일 공군본부와 국방부의 승인을 거쳐 본교 최초의 학칙을 확정하였다. 또한 창설한 지 17년이 지난 1966년에 본교의 창설 목적과 교육방향을 담은 교훈으로 「知·德·勇」을 제정하였는데, 이 교훈은 한글 전용화 정책에 따라 1970년 「배우고 익혀서 몸과 마음을 조국과 하늘에 바친다」로 변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서울캠퍼스 시기는 본교의 일반학 교과과정에서도 혁신적인 발전을 이룩한 기간이었다. 1961년 본교는 재교기간 중에 실시하였던 특기교육을 임관 이후로 조정함으로써, 일반학 교과과정의 내실 있는 운영을 위한 4년이라는 교육시간을 확보하게 되었다. 또한 1972년 개정한 교과과정에 따라 본교는 전공제도를 강화하여 운영하였다. 이에 따라 24기 사관생도부터 국방관리 전공 졸업생은 이학사 학위를, 항공·기계·전자공학 전공 졸업생은 공학사 학위를 수여받았으며, 35기 사관생도부터는 외국어·국제관계·경영학 전공 졸업생은 문학사 학위를, 전산과학 전공 졸업생은 이학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이 기간 중 본교의 교과과정은 공군이 운용하는 무기체계상의 특성에 의거하여 이공학 과목이 인문사회 과목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그리고 영어 구사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주한 미국 군사지원단(JUSMAG-KOREA)에 근무하는 미국 공군 장교를 중심으로 외국인을 강사로 초빙하는 교육을 적극적으로 운영하였다. 또한, 본교는 개정된 교과과정의 효과적인 운영과 생도교육의 전문성 향상을 위하여 본교 출신 졸업생에 대한 민간대학 위탁교육을 가속화하였다. 박사과정에 27명, 석사과정에 76명의 장교를 파견하여 장기근무 교수를 양성하였으며, 이들 장기교수를 중심으로 생도교육의 건실한 기반을 조성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본교 일반학 교수의 연구활동을 촉진하기 위하여 개교 17주년인 1966년 8월에 󰡔공사논문집󰡕 창간호를 발간하여 현재가지 이르고 있다.

1977년 본교는 생도 훈육 관련 업무를 체계화한 「생도 훈육업무 절차」를 발간함으로써, 공사십훈과 명예제도에 의존하고 있던 기존 훈육의 한계를 극복하고 훈육의 목적과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훈육의 과학화 및 표준화를 도모하였다. 또한 1967년에는 1년간의 생도생활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가장 우수한 편대에게 ‘무용편대(武勇編隊)‘의 영예를 수여하는 무용편대 제도가 신설되어 운영되다가, ’지용중대(智勇中隊)‘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개선된 교육환경 속에 생도 학술활동과 정서함양을 위한 과외활동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는데, 본교 교수 및 생도의 학술활동과 창작활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1964년에 「하늘」지가 교지로서 새롭게 창간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서울 대방동 캠퍼스는 27년간 '星武人'들의 숱한 추억이 깃든 영공수호의 보금자리였다. 더 높은 비상과 성장을 위해 교육과정과 교육환경을 발전시켜 나가 공사 7기생부터 37기생까지 수학하였고, 더 높고 넓은 곳으로 날아오르기 위해 1985년 12월 충북 청주 캠퍼스로 이전하기까지 27년동안 총 2,8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터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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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약의 날갯짓 : 청주캠퍼스의 공군사관학교 (1985. 12 ~ 2000)

도약의 날갯짓 : 청주캠퍼스의 공군사관학교 (1985. 12 ~ 2000)

본교는 정부의 수도권 인구 분산 정책에 부응하여 1979년부터 기지이전 계획을 수립하게 되었고, 1979년 6월 「공사 이전 연구위원회를 구성함으로써 학교 이전 계획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1981년 5월 7일 여러 대상지역 중에서 충청북도 청원군 남일면 쌍수리 일대가 가장 적합한 최종 후보지로 선정되었고, 같은 해 11월 16일 학교 이전에 관한 기본계획이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다. 이후 여러 어려움 속에 각 분야별 세부사업이 시작되었고, 1985년 초 「85 이동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학교본부, 교수부, 생도전대, 기지전대, 의무대대 등 각 부서별 이동대책반이 편성되어 12월 초부터 부대이동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21일 본교는 마침내 청주캠퍼스로 부대 이동을 성공적으로 완료함으로써, 도래하는 항공우주시대를 주도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환경의 튼튼한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청주캠퍼스로 이전한 이후 취임한 사관학교장들은 사관생도들을 세계일류의 정예공군 건설을 주도할 능력을 갖추고, 항공우주시대의 핵심지휘관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공군 장교로 양성하는 일에 전력하였다. 이들 학교장들은 학교발전을 위한 지휘관리에 역점을 두어 교육환경, 교육과정, 교수진 등에 대한 획기적 발전을 꾀하였는데, 1997년부터 본교에 여자생도를 입학시키기로 한 결정 역시 이러한 노력의 결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1997년 49기 사관생도 중 대한민국 최초의 여생도 20명이 탄생한 것은 미래 시대의 변화를 예견하는 성무인의 역사의식이 발현된 결과였다. 이들 여생도의 입학, 기본군사훈련, 이어지는 생도생활에 대한 우리 사회의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본교 편제상의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1987년 8월 1일부로 이루어진 편제 기구의 격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1988년에는 초등비행훈련을 담당하는 212비행대대가 본교로 편입되었고, 효율적인 비행훈련 지원체제를 위하여 창설된 청원기지가 성무기지로 개칭되었다. 평가관리실은 학교를 이전하면서 학교발전방안을 연구하는 연구발전실로 개칭되었으나, 다시 평가관리실이라는 명칭으로 되돌아갔다. 한편 도래하는 항공우주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1988년에 설치된 항공우주과학연구소와 항공적성능력의 전문적 발전을 도모하던 조종사적성연구소는 1995년 항공우주연구소로 통합 운영되었다. 본교는 청주캠퍼스에 현대화된 교육시설을 완비하여 쾌적한 교육환경 아래에서 생도들이 보다 높은 자긍심을 갖고 자발적으로 교육과 훈련에 임하도록 함으로써 질적 향상을 도모하였다. 1987년 1월 개관한 도서관은 1999년 상반기 당시 12만 7천여 권의 각종 장서와 다양한 시청각 자료를 갖춘 사관생도의 지적인 보고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정보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여 본교는 1996년 전 생도, 교수 및 훈육담당관에게 노트북 컴퓨터를 지급하기 시작하였고, 이후 교내 인트라넷 구축 및 활성화로 21세기를 선도할 수 있는 성무인 양성에 박차를 가하였다. 그리고 최초로 입학한 여생도들에 대한 교육의 성공적인 운영을 위하여 1996년 10월에는 여생도 복합회관이 완공되었다.

1980년대 이후 본교는 운전교육장, 아음속 풍동실험실을 건설하고 종합각개전투훈련장을 설치함으로써 강인한 상무정신과 필승의 신념을 가진 사관생도 양성을 위한 교육훈련을 뒷받침하도록 하였다. 또한 1996년 들어 본교는 그 임무를 ‘조종사 양성’이라는 좁은 의미에서 벗어나 ‘미래 항공우주시대를 선도할 정예 공군장교의 양성’이라는 포괄적 의미로 규정하였고, 여생도 입학에 대비한 입학 자격 조건의 변경과 함께 교과과정 개정, 전공분야 추가 신설 등의 주요 개정사항을 추진하였다. 그리고 군사학 교육의 전문성과 체계성 확립이라는 목표 아래, 1999년 국방학 전공이 신설됨으로써 전공과정이 9개에서 10개로 확대 운영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세계화의 국제변화에 부응한 외국사관생도의 수탁교육이 실시되고 있는데, 1994년부터 매년 1명씩 태국생도가 입학하여 4년간의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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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향한 비상 : 21세기의 공군사관학교상 (2,000 ~ )

우주를 향한 비상 : 21세기의 공군사관학교상 (2000 ~ )

2002년 11월 11일부를 기해 대대적인 편제개편이 이루어졌다. 교육처와 교재지원실이 교무처로 통합되었고 생활훈육처는 소양교육처로, 군사학처는 군사교육훈련처로, 생도대 교무처는 운영처로 각각 개칭되었다. 또한 통신대와 전산소가 정보통신대대로 통합되어 기지지원전대 예하에 배속되었으며 960대대와 교수부 학습지도실은 해체되었다. 7월 22일에는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의 ‘하늘관’이 개관되어 생도들이 보다 현대화된 편의시설에서 면회나 여가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2003년 1월 10일에는 본교 박물관이 12억 9천만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항온·항습시설을 갖춘 지상 2층 건물인 수장고를 준공함으로써 공군과 공군사관학교의 역사자료를 보다 효율적으로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국군의 날을 기념하여 개최되어 왔던 삼사체전은 친선행사로 변경·시행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6월 17일 축구·럭비 대표생도들에 대한 해단식이 거행되었다. 12월 16일에는 체육처 경기지도과가 해체되고 항공체육과가 새롭게 편성되면서 생도들의 체력관리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2004년 7월 8일에는 창군 이래 최초로 4학년 생도들이 해외항법훈련의 일환으로 방문하여 양국 공군간의 본격적인 교류를 맺는 계기가 되었으며, 10일 1일에는 국군의 날을 맞아 대통령으로부터 부대표창을 받기도 했다

2005년 7월 1일 교수부는 일부 학처의 명칭을 변경했으며(어학처→인문과학처, 인문사회처→사회과학처), 전공학과의 구성도 국제관계학, 군사전략학, 경영학, 전산과학, 항공우주공학, 기계공학, 전자공학, 산업공학의 8개 과정으로 개편하였다.

2006년 4월 5일 21세기 정보화시대에 부응하고 교육정보화체계를 개선하기 위하여 본교는 도서관, 교육정보화실, 정보통신대를 통합한 학술정보원을 창설하였다. 한편 1972년에 도입되어 공군의 정예 조종사 양성을 위한 실습과정 훈련기로 사용되어 오던 T-41B 항공기는 11월 28일 고별비행과 함께 퇴역하였으며, 차후 기종으로 2004년 7월 5일부터 도입되기 시작한 T-103이 단일 기종으로서 실습과정에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2008년 5월 21일에는 제212비행대대가 17만 시간 무사고 비행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또한 교수부를 중심으로 국내 우수 대학 및 연구기관과의 다양한 학술 교류가 지속되고 있으며, 항공우주공학과가 항공공학과와 우주공학과로 세분화됨으로써 항공우주시대를 주도할 인재 양성에 더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2009년 1월1일 교수부는 편제개편에 따라 기존의 4개처 15개 과에서 3개처(인문사회학처, 이공학처, 군사학처) 9개과(인문학과, 외국어과, 국제관계학과, 기초과학과, 항공우주기계공학과, 전자전산학과, 군사전략학과, 리더십학과)로 개편되었다. 이 해 6월 10일 본교는 개교 6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7월 1일에는 관할지역 주둔부대의 후방지원 및 기지작전 임무를 수행하는 기지전대가 해체되어 공사 근무지원단으로 새롭게 창설되었다.

빛 분수사진2010년 6월 15일 본교는 6·25전쟁에서 전사한 38명의 조종사를 비롯해, 창군 이래 ‘하늘에 살면서 하늘에 목숨 바친다’는 신념으로 살신성인한 378분의 영웅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영원한 빛」 추모비를 건립하였다. 10월 25일부터 7개국 27명의 외국생도 및 장교가 참가한 가운데 개최된 사관생도 「International Week」는 세계화 시대의 흐름에 맞춰 생도들의 글로벌 마인드를 형성하고 우방국 사관생도들과의 교류를 활성화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2011년에는 외국사관학교와의 위·수탁교육 확대 계획의 일환으로 필리핀, 터키, 몽골 수탁생도가 제63기 생도로 최초 입학하였고, 한국 공사생도 1명이 터키 공군사관학교에서 4년간의 위탁교육을 시작하였다.

2013년 2월 19일에는 21세기 항공우주시대의 주역이 될 제65기 공군사관생도 입학식이 거행되었다. 사상 처음으로 알제리 출신 함자 생도가 최초 입학 하였다.

2014년 4월 23일에는 한반도의 안보정세와 분단 현실에 대하여 명확히 인식하고 장차 통일 대한민국의 주역이 될 공군사관생도들에게 통일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자 통일 비전 TF 출범, 다양한 통일 프로젝트(워크숍, 아카데미포럼 등)를 진행하여 통일의 필연성과 당위성에 대한 공감대 형성,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통일 한국을 준비한다는 목적의식 공유, 통일관.안보관 함양, 미래 세대의 통일에 대한 이해와 긍정적 마인드 함양이라는 목표를 제시하였다

본교는 이와 같은 역사적 전통을 기틀로 삼아 미래 공군의 주역이 될 “정예 공군장교 양성”에 진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본교는 21세기 항공우주시대를 선도하고 최첨단 항공무기체계로 국가의 안전과 이익을 보장하는 젊은 보라매의 산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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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연혁 정보
연 도 내 용
1949. 01. 14. 항공사관학교 발족(김포)
1949. 06. 10. 제 1기 사관생도 입학식
1949. 10. 01. 항공사관학교를 공군사관학교로 개칭
1951. 01. 25. 제주도 모슬포기지로 이동
1951. 05. 01. 진해기지로 이동
1954. 03. 01. 이승만 대통령 무용(武勇) 하사(下賜)
1954. 05. 10. 4년제 교과과정 시행
1956. 04. 10. 제 4기 사관생도 졸업(최초 이학사 학위 수여)
1958. 12. 12. 서울캠퍼스로 이전
1966. 04. 11. 박정희 대통령이 성무대(星武臺)로 명명
1970. 02. 10. 교훈 '知·德·勇'을 '배우고 익혀서 몸과 마음을 조국과 하늘에 바친다'로 개정
1976. 03. 27. 이학사, 공학사 학위 수여
1985. 12. 21. 현 청주캠퍼스로 이전
1986. 03. 08. 故 임택순 대위 동상 제작
1987. 03. 27. 이학사, 공학사, 문학사 학위 수여
1997. 02. 22. 최초 여자사관생도 입학
2001. 03. 20. 최초 여자사관생도 장교 임관(제 49기 졸업)
2002. 03. 09. 항공상징탑 제막
2004. 07. 05. 실습과정 T-103(1호기) 도입
2004. 07. 08. 생도 최초 해외항법 훈련(중국)
2005. 03. 08. 군사학사 학위 동시 수여(53기 적용)
2006. 11. 28. 실습과정 T-41B 항공기 퇴역
2008. 10. 01. 국산 1호 항공기 ‘부활(復活)호’ 국가등록문화재 지정
2009. 06. 10. 공사 개교 60주년
2009. 07. 20. 父子 조종사 흉상 제작
2010. 06. 15. '영원한 빛' 추모비 제막
2011. 02. 18. 외국사관생도 수탁교육 확대(필리핀, 터키, 몽골생도 최초 입교)
2012. 04. 23. 3군 사관학교 1학년 통합교육 최초 시행
2013. 02. 19. 알제리 생도 최초 입교
2013. 02. 28. 공사 발전기획위원회 운영(공사 발전과제 발굴 및 제안)
2013. 08. 14. 교육체계 개선 및 진단 컨설팅(학위교육과정, 생활교육과정, 군사훈련과정)
2014. 04. 23. 통일비젼 TF 출범. 통일 프로젝트 추진(워크솝, 아카데미, 포럼 등)
2017. 03. 01. 지역연구학과 폐지, 항공우주정책학과 신설

연혁

우리부대의 발자취를 소개합니다.

부대연혁 정보
연 도 내 용
1949. 01. 14. 항공사관학교 발족(김포)
1949. 06. 10. 제 1기 사관생도 입학식
1949. 10. 01. 항공사관학교를 공군사관학교로 개칭
1951. 01. 25. 제주도 모슬포기지로 이동
1951. 05. 01. 진해기지로 이동
1954. 03. 01. 이승만 대통령 무용(武勇) 하사(下賜)
1954. 05. 10. 4년제 교과과정 시행
1956. 04. 10. 제 4기 사관생도 졸업(최초 이학사 학위 수여)
1958. 12. 12. 서울캠퍼스로 이전
1966. 04. 11. 박정희 대통령이 성무대(星武臺)로 명명
1970. 02. 10. 교훈 '知·德·勇'을 '배우고 익혀서 몸과 마음을 조국과 하늘에 바친다'로 개정
1976. 03. 27. 이학사, 공학사 학위 수여
1985. 12. 21. 현 청주캠퍼스로 이전
1986. 03. 08. 故 임택순 대위 동상 제작
1987. 03. 27. 이학사, 공학사, 문학사 학위 수여
1997. 02. 22. 최초 여자사관생도 입학
2001. 03. 20. 최초 여자사관생도 장교 임관(제 49기 졸업)
2002. 03. 09. 항공상징탑 제막
2004. 07. 05. 실습과정 T-103(1호기) 도입
2004. 07. 08. 생도 최초 해외항법 훈련(중국)
2005. 03. 08. 군사학사 학위 동시 수여(53기 적용)
2006. 11. 28. 실습과정 T-41B 항공기 퇴역
2008. 10. 01. 국산 1호 항공기 ‘부활(復活)호’ 국가등록문화재 지정
2009. 06. 10. 공사 개교 60주년
2009. 07. 20. 父子 조종사 흉상 제작
2010. 06. 15. '영원한 빛' 추모비 제막
2011. 02. 18. 외국사관생도 수탁교육 확대(필리핀, 터키, 몽골생도 최초 입교)
2012. 04. 23. 3군 사관학교 1학년 통합교육 최초 시행
2013. 02. 19. 알제리 생도 최초 입교
2013. 02. 28. 공사 발전기획위원회 운영(공사 발전과제 발굴 및 제안)
2013. 08. 14. 교육체계 개선 및 진단 컨설팅(학위교육과정, 생활교육과정, 군사훈련과정)
2014. 04. 23. 통일비젼 TF 출범. 통일 프로젝트 추진(워크솝, 아카데미, 포럼 등)
2017. 03. 01. 지역연구학과 폐지, 항공우주정책학과 신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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